[공연리뷰] 안드리스 넬손스(Andris Nelsons)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oston Symphony Orchestra, BSO)
말러 교향곡 7번 E단조(Gustav Mahler, Symphony No. 7)
2026. 9.24 보스턴 심포니홀
갑작스럽게 떠난 보스턴 여행,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SO) 홈페이지에서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7번 공연 소식을 발견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다행히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이어지는 시즌 개막 3연전 덕분에 하루 전날 여유있게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어쿠스틱을 자랑하는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넬손스와 BSO의 앙상블을 직접 마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벅찬 기대감이 차올랐다.
1부의 문을 연 곡은 작년에 작고한 현대음악의 거장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미완성 유작, 오케스트라를 위한 <프롤로그>의 세계 초연 무대였다. 생전 작곡가가 탐구했던 영적이고 우주적인 질문들이 거대한 관현악 편성 속에서 펼쳐졌다. 신비로우면서도 주술적으로 반복되는 미분음과 불안한 정서가 홀의 공기를 묵직하게 짓누르며 짙은 잔상을 남겼다. 연주가 끝난 후, 미완의 악보를 완성해 낸 동료 작곡가 엘레나 피르소바가 넬손스와 함께 무대에 올라 인사하는 장면은 한 시대의 음악사가 이어지는 순간을 목도하는 듯한 뭉클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각인되었다.
인터미션 후 이어진 2부는 넬손스가 보스턴 부임 이후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던, 마침내 BSO 말러 사이클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교향곡 7번 E단조였다. 최근 그가 빈 필하모닉과 함께 남긴 말러 교향곡 5번 음반이나 8번 실황에서 보여준 행보를 떠올려 볼 때, 7번은 넬손스 특유의 치밀하게 통제된 다이내믹과 분석적인 음향 구축이 가장 빛을 발할 작품으로 기대되었다.
1악장의 비가적인 테너호른 독주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 기대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넬손스는 템포를 여유 있게 가져가면서도, 그 안에 깃든 말러의 의도된 기괴한 흐름과 관현악적 디테일을 집요하리만치 선명하게 부활시켰다.
특히 처음 발을 들인 심포니 홀의 놀라운 음향학은 이 디테일의 해상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폭이 좁고 천장이 높은 전형적인 슈박스(Shoebox) 구조가 만들어내는 풍부한 초기 측면 반사음 덕분에, 각 악기의 소리는 섞이거나 탁해지지 않고 투명하게 공간을 갈랐다. 자칫 과한 잔향 속에서 뭉개지기 쉬운 콘트라베이스의 극단적인 피치카토와 타악기의 타격음마저도 묵직하고 명료한 포만감을 전달했다. 특히 4악장 두 번째 '밤의 음악(Nachtmusik)'에서 대편성 오케스트라 후방에 자리한 만돌린과 기타의 아스라한 세레나데 연주조차 마치 귓가에서 바로 현을 튕기는 것처럼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꽂혔던 것은 인상 깊었다.
기괴하고 몽환적인 밤의 장막을 걷어내고 태양처럼 폭발하는 마지막 5악장 론도-피날레에서, 넬손스의 통제력이 빛을 발했다. 그는 감정의 과잉을 극도로 절제하면서도 오케스트라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한계치까지 밀어붙였다. 카우벨과 종소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타악기와 금관 악기군이 쏟아내는 투티(Tutti)는 한 치의 탁함도 없이 찬란하게 홀을 가득 채우며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마지막 음표가 허공으로 흩어지기가 무섭게 객석에서는 전원 기립 박수와 함께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의 공연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뜨겁고 열광적인 풍경이었지만, 이날 넬손스와 보스턴 심포니가 빚어낸 치밀하고 압도적인 호연을 떠올리면 이 거대한 환호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우연한 기회에 마주한 보스턴의 밤은 잊을 수 없는 완벽한 음악적 성취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