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용주골’을 봤다. 용주골이 강제 철거가 된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성노동에 관한 사유를 미처 하지 않았었다는 감독의 이야기가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데 그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만듦새가 좋았다. 감독은 아무래도 삶이 있는 곳을 강제로 철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용주골의 성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를 연출하면서 그들의 철거 반대, 행정 폭력 반대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게 됐다.
감독은 도입부에서 용주골의 역사를 간단하게 짚어본다.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마을의 산업과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성노동자 각각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삶이 얄팍한 행정 계획에 따라 한순간에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먹고 살기 어려워 용주골로 온 사람들을 ‘피해자’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삶을 더욱더 궁지로 내모는 공권력의 모순을. 그리고 성노동의 근원도 모르면서 행정 폭력에 찬성하고 그것의 힘을 부풀리며 성노동자들의 노동을 근절하려고 하는, 성노동자들과 달리 시민으로 인정받는 이들의 이기심과 무지함, 무자비함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위해서라면 버젓이 존재하는 성노동자들의 삶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의 고집스러운 믿음은 성노동자들에게 죽음을 드리운다. 그들은 성노동자들을 사회에서 고립되게 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삶을 향한 긍지를 단지 성노동자들이 성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가져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용주골의 성노동자들을 공무원들은 저열하게 쳐다보고, 시민들은 북촌의 집들을 쳐다보듯 구경한다. 다만 저열한 눈빛으로. 어떤 사람도 견뎌서는 안 되는 대접을 그들은 기꺼이 행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성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논하고 싶다고 한다. 모순이다.
어떻게든 살려고 용주골에 온 성노동자들은 죽기 살기로 투쟁하는 모습을 봤다. 다행히도 그들의 투쟁은 점차 외롭지 않은 양상을 보였다. 연대하는 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인권을 위하는 이들이 곳곳에서 용주골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성노동자들을 괴물로 여기지 않았다. 무섭다면서도, 징그럽다면서도 조롱하는 모순적인 공무원들, 시민들과는 달리 함께 웃고 울었다. 입지를 다지기 어려운 사회 환경에서도 함께 긍지를 갖고 공권력이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옅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홍지연 연출가와 제작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밝히는 작품들을 만들길 바란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최근에 조희대 대법관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법의 지배’를 두둔하면서 법이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해준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양지에 두고 사회적 약자들을 철저하게 따돌리는 ‘법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분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