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생태학자: critical studies of technology, techno-ecological politics, platform studies, AI automation and labor, the socio-cultural history of the Korean Internet

대한민국 서울
<AI 미디어 생태학>이 인쇄를 마치고 온라인서점에 오늘 9/25일(목) 등록됐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알라딘서점] aladin.co.kr/shop/wproduct.a… [예스24] yes24.com/product/goods/1548… [교보서점] product.kyobobook.co.kr/d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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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의 재발견 『모호이너지의 움직이는 시각』 김상규 서울과기대 디자인학과 교수 일시: 2026. 11. 11.(수) 12:00-13:30 장소: 서울과기대 어의관 301호 강의실 인원: 30명(선착순) 참가비 무료, 점심 샌드위치 제공 주최: 미래 이후 연구소 신청(구글폼): forms.gle/vEnnsqHz8k84doE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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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석 KS Lee retweeted
실리콘밸리는 AI로 미래 재편할 기세 우리의 상상력까지 저들의 구도를 따라야 할까 (아래 원문 발췌) 요즘 주요 기술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이나 인재, 컴퓨팅 성능으로 경쟁하는 것 같지 않다. 더 큰 싸움은 저마다 내놓는 미래 예측이다. 메타 저커버그, 오픈AI 올트먼, 앤트로픽 아모데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자체가 이미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에게 장악됐다. 저들의 예측은 첨단 기술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모두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특권적 지식까지 있음을 시사한다. 어떤 경우든 AI는 어디에나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자리매김되어 있고, AI의 만연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기술 리더들이 상상의 공간을 빠르게 자신들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미래에 대한 다른 대안적인 긍정적 비전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비관적 서사들이 공적 삶을 지배했다. 좌파 진영에선 임박한 기후 재앙과 경제 붕괴에 대한 암울한 경고가, 극우 진영에선 인구 감소에 따른 종말론적 음모론이 제기됐다. 영국 철학자 조나단 화이트는 미래를 실리콘밸리에 사실상 내맡기면 중대한 위험이 따를 거라고 경고한다. 그는 열린 미래라는 개념 자체가 정치적 자유에 필수적인 “민주주의의 자원”이며, 그것은 “가능성이 낮을지라도 대안을 상상하고, 역경 속에서도 이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쓴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해방된 미래에 대한 믿음 없이는 노예제에 맞서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20세기 중반 사회 안전망 역시 당대 진보 정치가 미래 세대를 위한 보호 장치를 구상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이트는 미래가 점점 기대의 대상이 아닌 기피 대상으로 비춰질 때 민주주의의 근간 자체가 약화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혁명이 왕권에 도전한 이래 미래는 모든 정치가 펼쳐지는 주 무대였다. 인류의 필연적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 사상과 기술 발전이 결합되면서 사회가 방법을 찾기만 히면 “완벽한 세상이 바로 앞에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바로 그 힘들이 민주주의에 역효과를 낼 수도 있었다. 비정부기구 ‘데모크라시2076’의 사무총장인 아디티 준제아는 “미래를 둘러싼 경쟁은 권력을 둘러싼 경쟁이며, 누가 결정권을 가질지에 대한 경쟁”이라고 말한다. 실리콘밸리의 경영진은 미래가 자신들 손에 맡겨져야 안전하다고 대중을 설득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저들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행로를 결정할 권한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처럼 말한다. 1964년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는 뉴욕 카네기 재단과 협력해 사회학자 다니엘 벨이 이끄는 ‘2000년 위원회’를 창설했다. 다양한 분야의 저명한 사상가 수십 명을 모아 새천년을 정의할 “미래를 상상하고 문제 영역을 파악”하도록 요청했다. 이 위원회의 핵심 관심사-폭력적 갈등이 계속해서 주요 위협이 될 것인가? 컴퓨터가 “현재 지적 노동으로 여겨지는 많은 일상적 활동”을 필연적으로 대체하게 될 것인가?-는 당시의 깊은 불확실성에서 나왔다.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는 통제하기 어려운 현재를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치적 가능성의 범위를 효과적으로 좁혀버렸다. 미국 사회의 지속적인 현대화를 보장하려면 미래 시나리오 계획이 필수적이었지만, 정량화와 예측을 향한 이러한 추구는 공공 사안의 방향을 형성할 수 있는 개인의 권한을 박탈했다.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지적했듯이, 미래를 “확률의 높낮이에 따라 배열된 유한한 가능성의 영역”으로 좁혀 이해하는 관점을 대중화시켰다. 소련의 붕괴는 구 국제 질서가 무너지고 수백만 명이 새로운 종류의 자유를 경험한, 급진적 가능성이 엿보였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는 곧 미래가 오직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에만 속하는 “역사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생각에 가려지고 말았다. 정치학자 이반 크라스테프는 그 순간이 실제로는 “미래의 종말”이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정부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이 이미 나온 것처럼 보이는, “실질적인 선택이 없는 정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사회주의와 포퓰리즘 운동이 현 체제에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정치적 미래의 지평은 다시 한 번 넓어지는 듯했지만, 개인이 집을 소유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 가정을 꾸리는 것과 같은 미래의 꿈은 줄어들고 말았다. 오늘날 미래에 대한 서사와 경제 전망은 모두가 압도적으로 AI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급진적인 가능성의 차단이다. 왜냐하면 이 기술을 정치적 상상력의 중심에 두게 되면, 그 기술과 병행해서 혹은 그 기술을 대신해 여전히 가능할지도 모르는 다른 구상들을 간과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 구상에 대한 지금의 위기는 지난 세기의 위기와 공통점이 많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 기술이 일상생활을 급속도로 재편해 나가던 바로 그 시점에 지정학적 불안정이 새롭게 고조되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은 유토피아적 비전과 디스토피아적 비전 사이를 오가는 예측과 철학을 낳았다. 지금은 앞선 AI 기업들이 20세기 중반 미래 예측 기관들이 수행했던 역할과 거의 동일한 역할을 맡고 있다. 차이점은 이 기업들이 훨씬 더 많은 기술적·물질적 자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연구 대상으로 삼는 기술 자체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해 예측을 뒷받침할 수 있다. 가령, 오픈AI는 최근 ‘전략적 미래’ 부서를 신설했다. 이 ‘내부 싱크탱크’는 보수 성향 작가이자 트럼프 정부의 2025년 AI 백서 초안 작성을 도왔던 딘 볼이 이끌고 있다. 이 팀의 목적은 “첨단 AI가 가져올 장기적인 정치경제적 결과가 무엇일 가능성이 높으며,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AI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많은 예측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분법적 형태를 띠고 있다. 즉, AI가 모든 일자리를 없애거나 수천 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할 것, 암을 치료하거나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릴 것, 기후 변화를 해결하거나 치명적으로 가속화할 것, 새로운 황금기를 가져오거나 우리가 아는 세상을 파괴할 것이라는 식이다. “이 모든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서사이며,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는 방식을 극도로 제한한다”라고 미래학자이자 사회 시스템 전략가인 아리 왈락은 말한다. “우려스런 점은 우리가 현재 논쟁에서 나타나는 허구의 양극단을, 실제로 가능한 것에 대한 상상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현재 AI 기업들은 자신들의 비전에 대한 상당한 대중적 반대에 직면해 있다. 미래에 대한 논쟁은 당파적 경계를 뒤섞고 새로운 정치 집단의 출현을 촉진하고 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Pro-Human’ 행사에서 스티브 배넌과 나란히 등장, 실리콘밸리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뉴욕주 하원의원 알렉스 보레스는 AI 정책에 대해 민주당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Who Decides’라는 단체를 창설했다. 또 다른 단체인 ‘Tomorrow Together’는 AI에 초점을 맞춰 “민주당이 미래의 정치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결성됐다. 이런 노력들은 모두가 AI의 광범위한 도입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이들이 작성한 것이 아닌, AI에 대한 대중적 서사를 제시하고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다. 하지만 AI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재확인하려 노력하는 와중에도, 이들은 AI 기업들이 정한 조건에 따라 싸우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즉, AI 권력에 도전하면서도 정작 그 기술을 자신들의 정치적 비전의 중심에 두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벨, 칸 및 그들의 동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교훈은 그들이 예측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미래의 과학을 발전시키려는 열망에 갖힌 나머지 그들은 젊은 세대가 당대의 불의한 구조에 맞서 일어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을 위해 거리로 나설 가능성을 간과했다. ‘2000년 위원회’는 최종 보고서도 발표하지 못한 채 1974년에 해체됐다. 앤더슨이 지적했듯, 이 위원회는 “집단적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 전개에 뒤처졌다”는 이유로 “극적인 실패”로 간주되었다. 세대를 넘는 사회 변화는 그들의 예측 범위 안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nytimes.com/2026/10/26/mag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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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이후 연구소 학술대회 <동시대 AI 비판 연구의 지형도> 일시: 2026년 11월 13일(금) 오후 1:30 ~ 6:00 장소: 서울과학기술대 다빈치관 지하 1층 대형 강당(B001) 주최: 서울과학기술대 미래 이후 연구소 신청: 구글폼 사전신청 forms.gle/gEkuksmE5jJP7y3fA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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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뉴튼이 비유한 '거인의 어깨' 너머 우리 모두가 영감을 얻으며 그 지적 자원에 대한 존경과 헌사의 마음을 갖던 시절이 끝나고, AI바벨탑을 숭배하는 현실 개탄이다. AI 바벨탑이 내리누르는 '거인의 어깨'를 살리기 위한 처방은, 다른 지면에서 논의 예정이다. kyosu.net/news/articleVie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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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석 KS Lee retweeted
굉장히 재밌는 책이네요 주식과 코인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21세기 파시스트가 될 수 있다 라는 책이에요 금융화된 자본주의(financialized capitalism)가 자본주의의 게임화(gamefication)을 초래했고, 세계를 일종의 게임으로 보는 관점이 제노포비아와 소수자 혐오로 이어진다 라는 내용입니다. 특히 예측 시장, 크립토 시장 등이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이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cheating과 exploitation, 그레이존에서의 수익 창출이 오히려 영리한 방식이라고 칭송 받으며, 반대급부로 금융화가 만들어내는 호전성이 약자 멸시와 배타성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입니다. 한국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예측 시장이나 무기한 선물 같은 새로운 게임은 강하게 규제가 되는 반면, 국가기구가 허용하는 시스템 안에서의 게임은 오히려 권장하는 면이 강합니다. 그러다보니 금융화가 미국식 QAnon 음모론과 밈 문화와는 다르게 능력주의와 학벌중심 사회, 그리고 영끌 레버리지로 대표되는 과도한 리스크 테이킹 문화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국의 과도한 20대 레버리지 사용이 LOL 같은 경쟁 게임에 오랫동안 노출된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읽고 있는데, 내일 즈음에 다 읽고 한 번 독후감 쓸 예정
Daha önce @ayrintiyayinevi'ndan "Radikal Hayalgücü" @kuyayinlari'ndan da "Hayali Sermaye" kitapları çıkan Max Haiven'ın yeni kitabı: direct.mit.edu/books/oa-mono… Oyuncu ve Oyuna Getirilen: Hileli Kapitalizmden 21. Yüzyıl Faşizmine PDF'i şurada: shorturl.at/UVJ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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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적출" ..역시 표현법이...
부커상 수상 작가 아룬다티 로이(65, 인도)가 “나도 몰래 내 장기를 적출당한 것과 같다”며 앤트로픽의 행위가 저작권 침해를 넘어 “생명 채굴”이자 “인간성에 대한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hani.co.kr/arti/cultur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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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제 늦은 시간 방문과 질문, 만남, 그리고, 이렇게 논평까지 감사합니다.
서울과기대 미래이후연구소에서 주관한 강연 재밌게 듣고 왔다. 양아치 작가님의 슬라이드 속 사진들도 흥미로웠고 이광석 교수님의 AI의 추출주의적 경향에 관한 부분은 쉽게 잘 정리해 주신 것 같아 좋았다. 듣고 나서 든 생각인데,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를 비롯해 AI로 인핸 개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반응은 지극히 한국적인 맥락에서 풀어 가야 하지 않을까. 과거 국가 주도 발전에서의 성공 경험(그것이 과연 성공이었는가는 차치하고), ‘소멸 담론’에 포획된 지자체(혹은 ‘지방’ 주민)들이 느끼는 절박함(예컨대 데이터센터라도 유치해야 지역이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위 ‘정의로운 전환’은 꿈꿀 수 없는 나라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조금이나마 더 가동할 수 있으리라는 동해안 지역의 기대 등등... 결국 이런 걸 고민하다보면 사회가, 정치가 이 문제를 풀어 가야 할 텐데...(이하 생략)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용인의 그 논밭에서 일하는 이들 중 반대자는 없었을까? 분명히 있었을 테지. 그렇지만 분명 어떠한 ‘민주적’ 혹은 ‘법적’ 절차에 따라 밀려났을 것이다. 개발 앞에서 묵살되는 개인의 의견이라는 측면은 아파트 재개발과도 맞닿는 면이 있을 것 같고.(사는 곳 앞 동네가 재개발로 이주 절차가 개시된 탓에 든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 문제의식들을 어떻게 잘 엮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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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되시는 분들은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문화/과학> 발행인 강내희 선생님의 노작을 갖고 북클럽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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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약관] 동의하고 출근하다 - 박철웅 (에디터)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서 찾은 내 인용글! ilemonde.com/news/article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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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석 KS Lee retweeted
43% of Americans now view socialism positively, according to Gallup's latest poll. That's the highest Gallup has recorded since it began asking i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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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석 KS Lee retweeted
AI successionism—the belief that humans are merely a stepping-stone in cosmic evolution on the way to a “worthy successor”—is a growing movement. Now, it has more support from a man with unimaginable wealth and power. motherjones.com/politics/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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