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5공을 "무식한 똥별 쿠데타"라고 알고 있는 빡대가리들 있냐? 팩트 털어준다]
인터넷 댓글창 보면 아직도 "전두환? 그거 무식한 군바리들이 총칼 들고 청와대 꿀꺽한 거 아님?" 이딴 소리 하는 놈들 천지더라.
근데 팩트 까보잖아? 현실은 정반대임. 당시 기준 대한민국 0.001% 개씹엘리트 괴물 스펙이었음.
일단 당시 군대 꼬라지부터 알아야 함.
6·25 터지고 일선 지휘관들 줄줄이 갈려 나가니까, 대부대 지휘는커녕 소대장도 안 해본 놈들이 1~2년 만에 대령 달고 별 달던 시절이었음.
부대 운영 개념도 없고, 머릿속엔 일제 황군·만주군 시절 배운 "야 까라면 까!" "돌격해서 옥쇄해!" 이딴 똥군기밖에 없었음. 병사 목숨을 그냥 전시 소모품 취급하던 썩창 군대였던 거임.
이걸 옆에서 보던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가 극대노함.
"아니 한국 병사들은 존나 용맹한데, 장교 새끼들 리더십이 왜 이따구냐? 이러다 우리 철수하면 다 뒤진다."
그래서 워싱턴 멱살 잡고 진해에 미국 웨스트포인트 커리큘럼을 고대로 복붙해서 만든 게 '정규 4년제 육사(육사 11기)'임.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입학하자마자 『삶의 길(The Way of the Life)』 교재 펴놓고 미국 헌정사, 자유민주주의, 토론 문화부터 배움. 일반 명문대 뺨치는 과학 지식에, 거짓말 치면 가차 없이 쫓겨나는 웨스트포인트식 아너 코드(명예 규율)를 뼛속까지 박아넣음.
구시대 꼰대들이 보기에 11기는 그냥 '말 더럽게 안 통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원칙주의자 엘리트 집단'이었던 거임.
그리고 이 11기에서도 대가리 깨부수는 슈퍼스타가 바로 전두환이었음.
전두환은 뒤에서 눈치나 보던 놈이 절대 아님. 1959년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포트 브랙 미 육군 특수전학교에 한국군 최초로 파견됨. 가서 심리전, 게릴라전 마스터하고 귀국해서 한국군 특수전 교범 번역해 버림.
여기서 안 멈추고 1960년에 조지아주 포트 베닝 보병학교로 또 건너감. 그 악명 높은 미 육군 레인저(Ranger) 과정 들어간 거임. 독사, 악어 우글거리는 플로리다 늪지대랑 사막에서 8주 동안 굴러떨어지며 살아남는 생존 훈련인데, 한국군 최초로 이걸 따냄.
이때 훈련 중에 차지철이 동료 미군 장교 턱주가리 날려서 퇴교당할 뻔했거든? 근데 전두환이 유창한 영어와 살벌한 논리로 "미군 놈이 비신사적 행위를 해서 참교육한 거다"라고 브리핑해서 차지철 구해줌. 차지철이 평생 전두환한테 꼼짝 못 하고 레인저 반지 자랑하고 다닌 게 다 이유가 있었음.
심지어 뒤이어 열린 공수부대 최정예 패스파인더(공정유도요원) 훈련에서는 미군이랑 서방 우방국 에이스들 싹 다 제치고 외국군 장교 중 1등(수석) 먹어버림. "선수를 쳐야 이긴다",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본능이 이때 완성된 거임.
그리고 레전드 사건이 터짐. 1961년 5·16 군사혁명 당일.
1군사령부 이한림 장군이 쿠데타군 진압하러 온다는 썰이 돌면서 혁명군 본부가 똥줄 타기 시작함. 실패하면 싹 다 총살인 위기 상황인데, 5월 17일 아침에 군복 칼주름 잡은 20대 새파란 대위 하나가 육군본부 박정희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옴.
공수부대 선배였던 박종규 소령이 전두환의 미친 피지컬과 깡다구를 아니까 박정희랑 독대를 붙여준 거임.
근데 이 전두환 대위가 최고 권력자 박정희 얼굴에 대고 냅다 폭탄을 던짐.
"박 장군님, 이번 일 주도한 게 장도영 총장입니까, 장군님입니까?"
"나야."
"그럼 똑바로 묻겠습니다. 6·25 때 낙동강까지 밀리고 군대 속속들이 썩게 만든 늙은 장군들이 무슨 염치로 거사를 합니까? 군대 팔아먹은 인간들 아닙니까!"
옆에 있던 장교들 사시나무 떨듯 떨릴 타이밍인데, 박정희가 담담하게 받아침.
"군대 썩었다는 말, 변명 안 하겠다. 하지만 난 그렇게 썩은 정신으로 군대 생활 안 했다."
"장군님 청렴결백하다는 소린 들었습니다만, 스스로 떳떳하십니까?"
"떳떳하다. 안 그러면 국민이 날 용서 안 할 테니까."
여기서 전두환의 미친 딜교가 들어감.
"좋습니다. 그럼 이번 혁명의 소신과 나라 구할 계획을 저한테 납득시켜 보십시오. 납득이 되면 제 목숨 바쳐서 큰일 하나 하겠습니다."
"만약 납득이 안 간다면?"
"그럼 반란으로 규정하고 제가 반혁명 대열 맨 앞에 서겠습니다. 이 방에서 살아서 못 나가더라도 군인의 의(義)를 저버릴 순 없습니다."
목숨 걸고 들이받는 새파란 정예 엘리트 대위의 패기에 박정희가 무릎을 탁 침.
"전 대위, 든든하다. 우리 군에 자네 같은 장교가 있는 걸 보니 아직 안 썩었어!"
그러면서 박정희가 '방종한 후진 민주주의를 뜯어고치고 체질에 맞는 민족적 민주주의를 세우겠다'고 비전을 푸니까, 전두환이 감복해서 무릎을 꿇음.
"제가 육사 생도들 끌고 오겠습니다."
그 길로 박정희한테 혁명군 완장 차고 지프차 한 대 받아서 태릉 육사로 풀악셀 밟음. 당시 육사 교장이 반대해서 생도들이 갇혀 있었는데, '육사의 전설' 전두환이 강당에 올라가서 사자후를 토함.
"혁명을 주도한 박정희 장군은 청렴결백한 군인이다! 이 나라 운명이 걸린 국가적 위기에 우리가 잠자고 있어서 되겠는가!"
11기 동기들과 후배 생도들이 "선배님만 믿겠습니다!" 하고 폭풍 호응함.
다음 날인 5월 18일 아침, 화려한 예복 쫙 빼입은 육사 생도 800여 명이 전두환의 인솔 하에 동대문에서 시청, 종로, 광화문을 가로지르며 시가행진을 때려버림.
연도에 시민 수십만 명이 나와서 태극기 흔들고 난리가 났고, 1군사령부의 진압 명분은 그 순간 완벽하게 박살 남. 5·16의 성패를 가른 결정타를 전두환이 꽂아 넣은 거임.
결론?
전두환은 뒤에서 눈치나 보다가 숟가락 얹은 군바리가 아님.
일제 잔재 똥별들의 무능함에 치를 떨고, 미국 최고 권위 특수전 코스를 올킬한 뒤 목숨 걸고 판을 뒤엎었던 실전형 엘리트였던 거임.
팩트만 까봐도 영화 한 편 뚝딱 나오는 스펙인데, 선동에 낚여서 무식한 군인 운운하는 거 보면 진짜 웃음벨이 따로 없음.